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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시각으로 본 파리 마레지구

디자이너로서 일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몸담으면 창의력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파리...
승연 조
2024-09-14

디자이너로서 일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몸담으면 창의력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파리 마레 지구에서의 워케이션(workation)은 이런 궁금증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는 마레의 작은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본사와 미팅을 하고, 점심 후에는 좁은 골목길과 광장을 거닐며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해질녘 작업을 마치고 창 밖을 보면,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현대적인 패션 피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업무와 창작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레 지구의 거리

마레 지구는 역사와 트렌드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 그래피티와 팝업 스토어가 자리하고, 전통적인 정원이 있는 박물관 옆 골목엔 트렌디한 편집숍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런 과거와 현재의 조화 속에서 디자인 철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업무 노트북 옆에 스케치북을 펼쳐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거리의 색채를 스케치하며 느낀 점은, 창작자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도시의 리듬에 몸을 맡기니 사고방식이 훨씬 유연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레 지구 빈티지숍

워케이션 기간 동안 틈틈이 시간을 내어 방문한 마레 지구의 빈티지숍들은 패션 박물관 같았습니다. 특히 Rue Dupetit-Thouars 거리에서 만난 두 가게, Chez Snow Bunny와 Elevastor, 그리고 인근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 방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세 곳을 돌며 빈티지 트렌드가 현대 패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Chez Snow Bunny는 아담한 2층 구조의 작은 공간 안에 핫한 브랜드들의 독특한 아이템들이 가득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죠. 90년대와 2000년대 빈티지 아이템을 엄선한 이곳은 가격대가 조금 높지만, 아이템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반짝이는 크롭 탑, 로우라이즈 진, 큼직한 로고의 핸드백까지… 과거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던 아이템들이 세월을 입고 다시 빛나고 있었습니다. 진열대를 살펴보며, 과거에 유행했던 디자인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한쪽 벽에 걸린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의 비즈 장식 데님 재킷은 현대적인 재킷에 적용해볼 만한 디테일이 많았습니다.

Elevastor는 Snow Bunny와는 다른 느낌의 컨셉 스토어형 빈티지 편집숍이었습니다. 이곳은 빈티지보다는 전세계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예술, 디자인 소품들을 모아둔 공간으로, 작은 갤러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창립자가 과거 전설적인 컨셉 스토어 Colette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패션과 예술, 지역 커뮤니티가 어우러지는 문화 복합 공간이었습니다. 텔파, 팔로모 스페인, 롬바웃 같은 혁신적인 젊은 브랜드들의 아이템이 브랜드별로 구획되지 않고 색감이나 스타일 흐름에 따라 배치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객들이 보물찾기처럼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하며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설계된 공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가게는 브랜드 구분 없이 통합된 공간 디자인을 통해 방문객이 능동적으로 제품을 찾아보게 하는데, 이러한 연출은 “고객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을 때 만족감이 높아진다”는 철학에 기반한다고 합니다 . 한 공간에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 무드와 최첨단 신예 디자이너 작품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옛것과 새것의 충돌에서 생기는 ‘창조적 불협화음’이야말로 현대 패션의 추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DSM Paris)는 마레 지구 빈티지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Dover Street Market 파리 분점인 이곳은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가 직접 인테리어를 디자인한 공간으로 유명합니다. 내부는 일반 상점보다는 실험적인 예술 전시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새하얀 곡선 구조물들이 공간을 나누고, 그 사이에 다양한 브랜드의 의류와 액세서리가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매장 안에 브랜드별 전용 구역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백화점과 달리 한 군데에 한 브랜드만 진열하는 대신, 여러 디자이너의 아이템들이 테마별로 어우러져 있거나 설치 미술과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호기심을 갖고 매장 구석구석을 탐험하게 되었는데, 이는 “의도된 혼돈” 속에서 고객이 스스로 제품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DSM만의 ‘Beautiful Chaos‘ 철학이라고 합니다. 브랜드의 주류와 언더그라운드, 스트리트와 쿠튀르가 섞인 진열을 보며 기존 패션 문법을 벗어난 신선한 조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형화된 틀을 깨고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의 디자인 결합이 새로운 미학을 창조할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Dover Street Market에서 나온 후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빈티지 스카프 패턴과 최첨단 소재를 결합한 드레스, 스트리트 무드 그래픽과 클래식 실루엣 재킷을 접목한 디자인 등을 구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빈티지 트렌드가 현대 패션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세 곳을 방문하며 빈티지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나 취향이 아니라 패션의 중요한 영감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최근 패션계의 Y2K 트렌드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패션은 약 20년 주기로 순환한다는 말처럼, 2000년대 초반 유행이 지금 다시 주요 트렌드로 돌아왔습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태어나기 전 시대의 패션을 새롭게 소비하고 재창조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실무 관점에서, 브랜드가 과거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소비자들에게 강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빈티지숍에서 만난 한정판 슈즈, 가죽 재킷, 프린트 티셔츠 등은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었고, 이런 스토리를 현대 디자인으로 풀어내면 좋은 차별화 포인트가 됩니다. 마레 지구 빈티지 탐방의 가장 큰 인사이트는 “패션은 과거의 축적 위에서 진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컬렉션을 기획할 때 트렌드의 최전선만 쫓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만의 아카이브와 과거 유산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백화점 투어

파리의 백화점들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브랜드 디스플레이소비자 경험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저는 워케이션을 이용해 파리의 3대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프랭땅(Printemps), 르 봉 마르쉐(Le Bon Marché)를 차례로 둘러보며, 각 공간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와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을 관찰했습니다. 같은 상품일지라도 어떤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 디스플레이되느냐에 따라 소비자에게 전해지는 이미지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갤러리 라파예트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백화점 중앙을 장식한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돔 천장이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수놓인 거대한 돔과 그 아래 층층이 둘러싼 발코니들은 마치 웅장한 오페라 극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답게 내부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곳곳에서 여행객들이 천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런 화려한 공간 속에서 각 패션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기 위해 눈에 띄는 디스플레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1층 화장품 섹션을 지나 패션층으로 올라가면, 명품 브랜드 매장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는 시즌마다 컨셉이 바뀌는 팝업 스페이스가 있었습니다. 방문 당시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의 스트리트 무드 팝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네온사인과 거울 설치물이 고풍스러운 돔 천장과 대비되어 신선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이 엿보였습니다.

각 브랜드 부티크를 둘러보면, 샤넬처럼 클래식함을 강조한 곳은 블랙 앤 화이트의 미니멀한 세팅으로 우아하게 꾸며져 있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네킹도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는 등 보다 활력 있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공간 안에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따른 디스플레이 방식이 뚜렷이 구분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브랜드의 세계관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리드로서 저는 이런 점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옷 자체의 디자인뿐 아니라 매장 환경, 조명, 향기, 음악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 디자인이 곧 그 브랜드의 포지셔닝과 직결되는 것이니까요. 라파예트의 수많은 디스플레이를 보며 ‘우리 브랜드라면 이 거대한 돔 아래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프랭땅 백화점은 라파예트와 같은 오스만대로에 나란히 위치해 있었지만, 내부에 들어가니 또 다른 개성이 느껴졌습니다. 라파예트에 비해 약간 더 차분하고 정돈된 럭셔리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프랭땅 역시 아름다운 내부 장식과 돔천장이 유명한데, 저는 특히 1층 에스컬레이터 옆에 마련된 시즌별 윈도우 디스플레이 공간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침 방문 시기에 맞춰 꾸며진 홀리데이 테마의 진열장은 하나의 패션 화보처럼 연출되어 있었어요.

붉은 벨벳 드레스의 마네킹들과 반짝이는 조명으로 연출된 겨울 정원은 백화점 내에 또 다른 작은 세계를 창조해냈습니다. 프랭땅은 이런 창의적인 디스플레이로 유명하며, 외부 쇼윈도도 매 시즌 예술적으로 연출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내부 매장 구성에서 라파예트와 차이점은, 라파예트가 브랜드별 독립 매장 형태인 반면, 프랭땅은 카테고리별로 공간이 유연하게 연결된 곳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컨템포러리 여성복 섹션에서는 여러 브랜드 제품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고, 중앙에는 라운지와 스크린이 있어 종합 편집숍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배치는 고객 친화적인 전략으로 보였습니다. 고객들이 매장 전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경험하며 다양한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대형 백화점도 전통적인 브랜드 구획 방식보다 테마 중심의 유연한 진열이 소비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프랭땅은 이런 컨셉추얼한 접근으로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르 봉 마르쉐는 앞서 본 두 곳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파리 좌안(rive gauche)에 위치한 이곳은 세계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으로, 현재는 예술적이고 부티크적인 감성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 파리지앵들이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고, 통로는 넓고 깔끔했으며 조명은 부드러웠습니다. 각 층마다 작품 같은 휴식 공간과 서적, 카페 코너가 있어 쇼핑 중에도 갤러리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백화점 중앙에 설치된 대형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흰색 보트 조형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 작품은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설치미술로, 150개의 배 모형으로 항해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패션 매장 한가운데 이런 대형 예술 작품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르 봉 마르쉐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술과 쇼핑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 덕분에 고객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전시 관람객으로서 매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브랜드 매장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디스플레이에 공을 들인 것이 보였습니다. 한 디자이너 브랜드 코너는 작업실 컨셉으로 꾸며져 있어 친밀한 느낌을 주었고, 뷰티 코너는 향수를 시각화한 아트월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백화점 전체의 우아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르 봉 마르쉐를 통해 브랜드와 공간의 정체성이 일치할 때 고객 경험이 최대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객은 제품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전시된 공간의 분위기까지 함께 구매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브랜드도 언젠가 이런 공간을 계획한다면, 제품 디자인에서 나아가 그 제품이 놓일 환경과 스토리까지 고려하는 통합적 디자인 접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 디자인은 패션 디자인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파리의 백화점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뮤지엄에서 얻은 영감

패션과 예술은 언제나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파리를 방문한 김에 세계적인 미술관들을 찾아 순수 예술로부터 패션 디자인 영감을 얻고자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예술 작품의 구조, 실루엣, 색채를 패션 디자인으로 변환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거닐며 스케치북에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서자 방대한 예술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전 조각들의 우아한 실루엣과 드레이프였습니다. 1층 계단에 올라 만난 삼오트라케의 니케상(승리의 여신상)은 머리와 팔이 없음에도 강렬한 역동성과 우아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몸에 밀착된 옷자락이 바람을 맞아 휘날리는 모습은 돌이지만 마치 천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완벽하게 포착한 것 같았습니다.

삼오트라케의 니케상

‘이런 실루엣을 현대 패션으로 옮긴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케상의 드레이프를 재현한 일상복이라면, 걸을 때마다 마치 조각상에 생명이 깃든 듯한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쿠튀리에들이 고전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드레이핑 기법을 발전시켜왔는데, 직접 보니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추가: 2025년 DROP 1부터 이에 영감을 받은 드레이프 라인을 출시했습니다!)

루브르의 건축 자체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중세 요새 위에 세워진 이 박물관의 아치형 천장, 기둥, 채광창의 빛은 공간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패션에서도 한 벌의 옷을 건축에 비유하는데, 이를 통해 의상의 실루엣과 패턴 구성에서 균형과 비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술이든 의상이든 조형물은 기본적으로 구조 위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회화와 조각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색채와 분위기에 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인상주의 작품들에서는 빛을 표현하는 대담한 색 조합과 붓터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안개 낀 베퇴유 (Vétheuil, effet gris)

모네의 작품 속 안개 낀 아침빛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반 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색채들은 패션 컬렉션의 색상 팔레트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네 그림의 연한 라벤더, 스카이 블루, 살구색 조합은 봄 컬렉션에 어울리는 세련된 팔레트가 될 수 있고, 반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딥그린, 코발트 블루 대비는 가을 컬렉션의 포인트 컬러로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오르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시대 분위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의상과 포즈, 파리 거리 풍경은 당시의 생활과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레트로 무드를 현대 디자인에 녹이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과거 스타일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감성과 이야기를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하면 노스텔직한 컬렉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건물 자체도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이곳은 높은 아치형 천장과 거대한 시계 창문이 있어 산업 시대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앙 홀에서 시계를 올려다보며 스케치를 했는데, 기계식 시계의 기하학적 프레임과 톱니 모양은 패션에서 기하학 패턴이나 컷아웃 디테일로 응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생로랑의 드레스

과거 입생로랑(YSL)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드레스로 구현했던 것처럼, 순수 예술의 요소를 패션 디자인에 접목하는 시도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돌며 이런 크로스오버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발레리나 그림에서 튤 스커트 디자인을, 조각상의 근육 표현에서 새로운 절개선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며, 둘 다 시대의 미감을 담는 문화적 표현 수단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좋은 패션 디자인은 결국 시대의 예술성을 옷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 뮤지엄에서의 시간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컬렉션을 준비할 때 무드보드에 예술 작품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디자인 팀과 미술관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 감상이 패션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창의적 선순환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000아카이브스와 파리에서 얻은 인사이트

파리에서의 워케이션과 탐방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디자인 리드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희 브랜드 2000아카이브스가 추구하는 ‘빈티지와 현대적 감각의 조화‘라는 키워드를 이번 파리 경험을 통해 더욱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2000년대의 아카이브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저희 브랜드 철학인데, 마레 지구의 빈티지숍부터 백화점과 미술관까지 파리 곳곳에서 확인한 트렌드는 “과거를 품은 현재“였기 때문입니다.

빈티지 패션의 인기에서 저희는 지속가능성과 스토리텔링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것이 다시 주목받는 현상은 패션이 직선적이 아닌 순환적 구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순환의 고리마다 새로운 해석이 더해집니다. 2000 아카이브스의 디자인을 구상할 때도, 단순히 레트로 디자인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요소를 오늘날의 기술과 미감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직접 본 Y2K 열풍은 이런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젊은 세대가 오래된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 진정성과 노스탤지어를 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저희가 할 일은, 2000년대 특유의 번쩍이는 소재나 과감한 로고 플레이 같은 빈티지 감성 요소를 현대적 실루엣과 품질로 세련되게 구현하여, 소비자들이 과거의 낭만을 현재의 옷장에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리의 백화점들과 컨셉 스토어에서는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저희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실제 공간과 이미지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그림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르 봉 마르쉐의 예술적 디스플레이를 보며, 향후 플래그십 스토어를 계획한다면 단순한 제품 진열 공간이 아닌 작은 갤러리처럼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객들이 옷을 보러 왔다가 하나의 설치미술 같은 공간에서 브랜드 세계관에 빠져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마레 지구의 Elevastor나 Dover Street Market처럼 커뮤니티와 교류가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브랜드 철학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여 전시도 하고 이벤트도 즐기는, 살아있는 플랫폼으로서의 패션 브랜드 공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전을 실현하려면 지금부터 제품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일관된 철학을 심어가야 할 것입니다. 각 옷이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 되고, 그것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예술 설치처럼 조화를 이루도록요.

마지막으로, 창작자로서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균형감, 그리고 나만의 필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파리에서의 경험은 수많은 자극과 정보를 주었지만, 그중 무엇을 취하고 어떻게 적용할지는 디자인 리드로서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따라하기보다는 다양한 영감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소화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빈티지숍, 백화점, 박물관에서 본 수많은 요소 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루브르의 니케상 실루엣, Snow Bunny의 비즈 톱 질감, 르 봉 마르쉐 천장의 설치 예술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순간에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다음 시즌 디자인으로 구현해볼 계획입니다. 직관은 어쩌면 풍부한 경험이 쌓여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결정체가 아닐까요? 파리에서의 시간은 그런 직관의 목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000아카이브스의 다음 컬렉션에는 파리에서 얻은 이 영감과 철학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언젠가 다시 파리를 방문할 때, 저희 브랜드의 작품이 이 도시의 쇼윈도나 갤러리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Paris, merci pour l’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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